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논란, 미국이 즉각 반대한 진짜 이유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문제가 국제 외교 무대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란이 미국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60일간의 무료 개방 기간이 끝나면 각종 명목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세계 원유 무역의 핵심 통로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사안은 단순한 수수료 문제가 아닙니다. 해협을 누가 통제하는가, 국제법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그리고 에너지 패권의 판도는 어디로 흐르는가라는 훨씬 큰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 호르무즈 해협이 갖는 숫자적 무게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량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20%,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량의 20% 이상을 차지합니다. 하루 통과 물동량은 약 1,700만~2,100만 배럴 수준으로, 이는 미국 하루 소비량(약 2,000만 배럴)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폭이 가장 좁은 구간은 불과 33킬로미터에 불과하며, 실제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항행 가능 수로는 각 방향 3킬로미터 내외입니다. 이 좁은 수로 하나가 막히거나 비용 장벽이 생기면 국제 유가는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2019년 이란의 유조선 나포 사태 당시 브렌트유 가격은 하루 만에 15% 이상 급등한 전례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들은 모두 이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합니다. 사우디는 킬로미터당 일부 물량을 우회할 수 있는 얀부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 수출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용량입니다. 즉, 호르무즈가 막히거나 통행 비용이 급증하면 대안이 사실상 없다는 뜻입니다.
⚖️ '국제수로' 논쟁, 법리적 구조를 해부하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어떤 나라도 국제수로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발언의 법적 근거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있습니다. UNCLOS 제37조부터 제44조는 '국제 항행에 사용되는 해협'에 대해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보장하며, 연안국이 이를 정지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통행료 부과는 사실상 이 통과통항권을 금전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그러나 이란의 반론도 법적으로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란은 UNCLOS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즉, 조약 당사국이 아니므로 엄밀히 말해 UNCLOS 상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이 자국과 오만의 영해가 겹치는 구간이라는 점을 근거로 주권적 관할권을 주장해 왔습니다. 오만이 이번에 이란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통항 서비스 요금 검토 입장을 함께 밝힌 것도 이 맥락에서 읽혀야 합니다. 단순한 동조가 아니라, 오만 역시 해협 수익화에 이해관계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 수에즈 운하와의 비교가 보여주는 함의
비교 사례로 수에즈 운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연간 약 90억 달러(2023년 기준) 이상의 통행료 수입을 거두고 있습니다. 수에즈는 내륙 인공수로이기 때문에 UNCLOS의 통과통항권 조항이 직접 적용되지 않으며, 이집트는 합법적으로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반면 호르무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으로, 국제법상 분류가 다릅니다. 이란이 만약 '항행 서비스 수수료'나 '환경 관리 비용' 같은 명목으로 우회적인 요금 체계를 만든다면, 이는 법적으로 직접적인 통행료 부과와 구별되는 회색지대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논의가 단순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입니다.
📉 에너지 시장과 걸프 국가들이 직면하는 구조적 리스크
호르무즈 통행료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곳은 역설적으로 이란의 이웃 국가들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UAE의 ADNOC, 쿠웨이트페트롤리엄 등은 모두 이 해협을 통해 원유를 선적합니다. 수수료가 배럴당 1달러만 부과되더라도, 하루 2,000만 배럴 기준으로 연간 약 7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비용은 결국 수입국인 아시아, 유럽 소비자 가격에 전가됩니다.
🔺 특히 한국, 일본, 중국, 인도는 전체 원유 수입의 60~80%를 중동산에 의존하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통과합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 해협의 통행료 부과가 에너지 안보 문제를 넘어 무역수지와 물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거시경제 변수가 됩니다. 루비오 장관이 UAE, 쿠웨이트, 바레인을 순방하며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단순한 외교적 형식이 아닙니다. 걸프 국가들이 이란의 통행료 구상에 암묵적으로라도 동조할 경우,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루비오 순방의 진짜 목적, 안심인가 압박인가
로이터통신이 분석한 대로 이번 루비오 장관의 걸프 순방은 겉으로는 동맹 관계 재확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층적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종전 MOU의 내용에 불안감을 느끼는 걸프 국가들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란 재건기금 3,000억 달러 조성 논의에 걸프 국가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루비오 장관은 "아직 한참 먼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는 걸프 국가들의 재정적 부담에 대한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둘째, 미국 내 역할 분담 문제입니다. JD 밴스 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 및 후속 협의를 주도하는 구도 속에서, 루비오 장관은 지역 동맹 관리라는 분업화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외 전략이 단일 라인이 아니라 다중 채널로 운영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협상 상대방인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셋째,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하마스·헤즈볼라 문제를 향후 협상 의제로 못 박으려는 포석입니다. 이란 외무부가 "미사일 프로그램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재확인한 상황에서, 루비오 장관이 이를 의제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양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앞으로의 전망, 세 가지 시나리오
현 상황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 현상 유지 시나리오: 이란이 60일 이후에도 국제적 압박을 의식해 사실상 통행료 부과를 유예하거나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경우입니다. IAEA 사찰 수용, 핵 협상 진전 등 외교적 프로세스가 작동한다면 이란도 무리하게 해협 카드를 꺼낼 이유가 줄어듭니다.
⬛ 우회적 수익화 시나리오: 직접적인 통행료 명칭 대신 '항행 안전 서비스료', '해양 환경 보전 기여금' 같은 형식으로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실질적 수익을 추구하는 이 방식은 국제사회가 대응하기 가장 까다로운 형태입니다.
⬛ 충돌 고조 시나리오: 핵 협상이 결렬되거나 이란의 대리 세력이 미군 또는 걸프 국가를 겨냥한 공격을 재개할 경우, 해협 문제는 외교 테이블에서 군사적 긴장으로 급전환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이 가능성을 열어둔 표현입니다.
💡 이 사안이 담고 있는 핵심 구조
호르무즈 통행료 논의는 결국 국제 질서의 근본적인 균열을 드러냅니다. 서방 주도의 국제법 체계와, 그 체계를 자국 이익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국가들의 충돌은 호르무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중국해, 북극 항로, 흑해 통항 문제 등 유사한 구조의 갈등이 전 세계 여러 해협과 수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란의 통행료 구상이 국제사회의 묵인 아래 어떤 형태로든 실현된다면, 이는 다른 지역 패권 국가들에게도 유사한 시도를 정당화하는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번 논쟁은 원유 수수료 문제가 아니라, 누가 국제 규범을 만들고 집행하는가에 관한 21세기 패권 경쟁의 축소판입니다. 60일이라는 시한이 다가올수록 이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한 척 한 척의 무게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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